나의 마지막 경력 변곡점은 5년전에 지나갔다...

다국적 테크놀로지기업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50세 A씨.
쓰... 퓨우...  
회사 앞 공터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는 한 겨울 찬바람에 순식간에 흐트러져 사라집니다.
말없이 쳐다보는 하늘은 맑고 청명하기만 합니다.
"어떡하나?..."
한 달전 회사에서 감원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다른 부서로 이동발령하는 옵션을 가까스로 부여 잡고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고민을 하지만, 딱히 고민에 대한 답도 없이 챗바퀴 돌 듯 하고, 잔뜩 구름이 드리워진 앞 길은 여전합니다.
 
10년전만 해도 만들면 팔리는 거의 독점적인 솔루션 덕분에 한 때는 철밥통에 가까운 기업이라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며 이직을 하였습니다.  그리곤, 입사후 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직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더 좋은 조건이면 고민해 보겠지만, 딱히 그런 기회도 없고 해서 그냥 그냥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6년전부터 등장한 경쟁사의 강력한 신규 솔루션과 가격잇점을 바탕으로 한 높은 시장침투력으로 인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시장점유율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터지고 공급망 대란이 벌어져서 글로벌 매출에 충격을 받았고,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재편전략으로 인해, 중국시장 매출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회사가 워낙 탄탄해서 그 정도로 위험하진 않을텐데, 선제적으로 사업 구조조정과 인력조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업은 슬림하게 경쟁력을 회복하지만, 직원들은 줄 잘못서서 선택한 사업부문 덕분에 해당 사업부서의 직원들이 감원의 주 타겟이 되고 있습니다.  가까스로 옵션 B를 통해 기사회생한 건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이 카드도 유효기간이 일년 남짓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음만 급합니다.
 
GlobalData 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23년3분기 전세계 채용공고수는 전년대비 29퍼센트 감소했고, 2023년2분기 대비 11퍼센트 감소했다고 합니다.  잘 나가던 테크/통신 산업은 금융산업과 더불어 감원열풍으로 인한 고용시장 위축이 뚜렷한 추세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분야 전문가 채용 수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수요 대비 전문인력 풀 (공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로그래밍 공부라도 할 걸 하는 덧없는 아쉬움이 뇌리를 스쳐지나 갑니다.  이젠 너무 늦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깊은 생각없이 눈에 띄는대로 모집공고 몇 군데에 이력서를 보냅니다.
돌아온 답은 ...
Over-Qualification!
나이가... 
저도 압니다.  말하지 않아도...
 
30대 초반 까지만 해도 스카우트 하겠다는 기업들이 귀찮았습니다.
아니...
그런 기회들이 있다는 자체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나를 찾을 거라는 착각을 하며 경력제안들을 허공에 날려 버렸습니다.
다 어디 갔나요?
“내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 너무도 팔팔합니다.
할 수 있어요!  나보다 나이 적은 매니저도 감당할 수 있어요.  충분히.  난 그런 거 중요하지 않은 외국계 기업을 오랫동안 다녀 왔다구요.”
맘 속으로 소리 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나를 찾는 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경력 변곡점들 Career Inflection Points ...
1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명심하고 더 잘 해볼 자신이 있습니다.  이미 경력의 끝 물을 맛 보고 있으니까요.

또 다시 담배 한 개피를 더 꺼냅니다.
찬 바람이 팔뚝에 소으름을 일으키지만, 그래도 한 대만 더 피워야 겠습니다.
한 개피 더 피우는 찰나에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길 바라면서...
하...
로또복권이나 한 장 사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