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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관리

직장운이 뜻대로 안풀려도 준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by 파스텔블링크 (PastelBlink)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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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연구소 두 개가 통합되면서 바뀐 신임 기술기획 팀장님.
그 분의 책상위 모니터에는 오늘도 고도리 게임기가 돌아 가고 있습니다.  게임회사가 아닌대도 말입니다. 아이디어는 없고, 저녁 회식자리면 으레히 술상위를 스테이지 삼아 올라가시는 아무도 원치 않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만땅 엔터테이너! 오늘도 고도리팀장은 부족한 업무역량을 담당상무에게 충성주를 바치는 것으로 채웁니다.

반.면.교.사.

오늘도 고도리팀장님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정신차리고 내 갈길을 빨리 개척해야 합니다.  더늦기 전에...
옆 사업부 마케팅팀장님이 나와 같이 일하고 싶다며, 내가 동의한다면 나의 고도리팀장을 찾아가 제안하러 가신답니다.  이윽고, 고도리팀장님은 거절의 제스처를 회의실 밖으로 생중계 해 주십니다. 

"사내 공모"

새로이 해외사업본부가 신설되는데, 전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수출하는 조직 포지션에 사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채용을 진행하게 됩니다.
절대 놓칠 수 없는 황금같은 기회입니다. 
수출역군으로 전세계를 누비셨던 아버님의 모습을 이제 내가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였고, 써먹을 때가 별로 없어서 줄어들던 영어 실력도 원없이 써 먹고 살릴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외국출장 실컷 다니고 맛있는 기내식, 품격있는 호텔라운지 조식부페와 커피, 그리고 은은한 트럼펫 재즈음악... 이런 원초적인 욕구도 해외영업을 하고 싶은 이유중 하나입니다. 
 
사내공모라면 훼방꾼 고도리팀장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내공모에서 채용합격된 임직원은 무조건 "강제" 부서이동 조치가 발효되기 때문입니다.  사내공모에 지원한 뒤 일주일이 지나  서류전형 합격 메일을 받습니다.  모든게 비밀리에 진행됩니다.  그리고는 대면면접 시간일정 및 장소 "통보".  대면면접 장소는 현 근무지인 서울 사무소에서 한 시간 떨어진 경기도 본사에서 진행합니다.  지원자에게 면접시간과 장소에 대한 선택권은 없습니다. 
 
꼭 붙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수 많은 경기도 본사 임직원을 업무로 만나고 있어서, 그 시간에 면접보러 갔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내가 면접보러 왔더라 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도리팀장님의 보복성 후폭풍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밀보장이라 했고,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상황이 종료될 즈음에는 소문이 거의 사실인 것 처럼 돌아다나게 됩니다.   정말 천우신조로 당일날 경기도 공장에 업무출장 핑계를 댈 수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만, 최대한 은밀하게 면접장에 도착해서 면접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뒷문으로 나옵니다. 
 
그 후로  하루, 이틀,  일주일 ...
"아이씨... 연락은 언제 오는거야?"
모든 신경은 매일 한시간마다 체크하는 이메일에 쏠려 있습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초조해 집니다.  보름이 지나고 드디어 합격!
건물 옥상에 올라 가 시원한 바람과 자판기에서 뽑은 포도알쥬스로 승리를 자축합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습니다.  고도리팀장께서 다된 밥에 재 뿌릴 빌미를 주지 않도록 ... 마음속으로 고사라도 지내고 침묵해야 합니다.  지원자에게 개별 합격 통보후 3일차, 팀장이 면담을 하자고 합니다.  오늘 인사팀에서 합격자의 직속팀장에게 합격통보 및 후속조치 메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올것이 왔네요.  침착하게 잘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 (무게 잡은 고도리팀장님이 침묵을 깨고) 
  박 대리...
  왜 얘기 안했어? "
 
몰라서 물어 보시나요?  ㅎㅎ  면담은 잘 선방하고  그 담주에 경기도 해외사업본부로 출근발령이 났습니다.  경기도 북단에서 경기도 남단으로의 왕복5시간 출퇴근 길이지만 너무 행복합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해외영업, 무역, ...을  마침내 할 수 있게 되었다니.  미치게 열심히 했고, 성과도 팍팍 납니다.  이스라엘, 가나, ... 통신사업자를 만나 입찰제안도 하고 회사최초로 디지털핸드폰 초도수출의 주역이 됩니다.  이렇게 내 경력 성장의 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고,  고도리팀장과는 악연을 끊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고도리팀장과의 악연의 잔재는 IMF 후폭풍을 통해 짧지만 진하게 맛 볼 기회를 얻습니다.  IMF 로 인해, 회사 매출이 타격을 받아서 사업본부, 팀 단위로 임직원 감원 쿼타가 배당됩니다.  최우선 감원대상자 조건은 전년도 고과 기준.  연말 최우수 임직원상도 받았는데, 고도리 팀장이 사내공모로 울타리를 벗어난 그해의 제 고과를 최하로 주셨습니다.  물망초 같은 분이십니다.  오래 오래 고도리팀장님을 잊지 말아야 겠네요.   나와 같은 시기에  사내공모를 통해 해외사업본부로 발령받은 다른 직원들도 나처럼 직격탄을 맞은 모양입니다.  최소한 그들은 "미안하다.  떠나는 직원보다  남아있는 직원을 더 챙기는 게 관행이어서..." 라는 말이라도 들었다네요.

인사팀장님이 고도리팀장으로부터 협박 전화도 받았다는 이야기도 후일담으로 듣게 됩니다.
"박 대리를 (나한테 상의도 없이) 니 맘대로 발령냈지?!!!
  너 어디 언제까지 인사팀에서 잘 먹고 살지 
  내가 지켜볼게.  XXXX야"
정말 다행히도 해외영업 직속팀장이 내 역량을 적극 지지해 줬고, 때마침 사업부내 자연퇴사 인원수가 감원쿼터량을 상쇄 시켜 줘서 폭풍을 비껴갈 수 있었습니다.

운.칠.기.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계획하고 실천하고, 될까말까 하다가 안되고, 술 한잔으로 쓰린 맘을 다스립니다.   또 다시 기운차리고 에너지 충만해서 계획 수정하고 실천하고 ... 새벽 왕복5시간의 출,퇴근길.  통근버스 좌석에 앉아 영자신문 속지 (영문기사 해설서)를 들고 중얼중얼 거리며 또다시 내일을 준비해 왔습니다.  
 
무수한 실패의 반복에도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다시 준비하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예고되지 않은 시기와 모습으로 불현듯 나를 찾아 온 "사내 공모" 와 같은 정말 소중한 일생의 기회를 내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앞길을 훼방 놓는 분들이  불합리한 운명의 장난을 쳐도 비껴가면서 말입니다. 
좋은 기운을 만들어 봅시다!   혹시 기분좋게 잘 쓰고도 남은 좋은 기운이 있다면 소중한 주위분들에게 나눠 주시구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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