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금요일 오후, 핸드폰 전화 멜로디가 울립니다. 화면에는 오래 전 전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직원의 이름이 찍힙니다.
"선배님, 잘 지내시죠?
하하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별일없지?
(느낌이 별일 있을 거 같아 물어 봤습니다)
네... 별일이 많습니다. 하하
이번 주에 잠깐 뵙고 싶어서요.
"
예감은 현실이 되고 후배와 만나 소주 한잔으로 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그의 얘기를 들어 주지만, 시원하게 일자리를 구해주지는 못합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인원 충원이 필요한 상태도 아니었고, 그를 내 혼자 힘으로 꽂아 줄 만큼 채용시스템이 호락호락 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하지 않은 직장내 문제로, 주식 폭락으로, 경제 사기범 문제로, ... 다양한 이유로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일순위가 됩니다. 그래도, 저축해 놓은 돈이 있으니까 그동안 일자리도 찾아보면 좋은 일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일자리를 구하는 노력은 지난 수 년간 직장 생활하면서 꾸준히 해 왔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job offer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 인지 오랜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더 시간투자를 해서 알아볼거고 그러면 어떻게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긍정마인드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좀 푹 쉬자! 그리고, 보낸 첫 일주일은 꿈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너무 이쁜 아기 공주님과 주중에 영화도 보고 맛있는 저녁도 먹습니다. 하... 아직 아내에게는 일을 못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꺼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월차 냈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도, 배포가 크지 못해서 내 돈내고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먹지는 못합니다.
이주일이 지났습니다. 퇴직금 받은 걸로 앞으로 두 세 달은 더 버티겠지만, 더 이상 아내를 속일 비상금은 없습니다. 통장에 월급이 표시되지 않으면 눈치빠른 아내는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감지하게 될 겁니다. 급여통장을 내가 직접 관리했더라면 몇 달을 더 얘기 않하고 시간을 벌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를 합니다.
삼주일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정말... 아내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녀에게 가장 놀라지 않도록 전달할 수 있는 타이밍을 찾았고, 그렇게 아내는 알게 됩니다. 다행히, 약간의 퇴직금이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당분간의 위안을 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크게 놀라는 모습이 아닙니다. 지난 번 이직 했던 경험이 있어서 아내가 퇴사에 대한 내성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경험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흘러 갑니다.
아내가 조금씩 감지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40대중반의 남편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살림꾼인 아내는 자잘한 쇼핑으로 소소한 행복을 느껴 왔지만, 이제 돈 안드는 다른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 달이 지났습니다. 막다른 절벽 앞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아이 분유값을 번다" 는 말이 이제 내 얘기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세 끼 라면을 먹어도 맛있게 먹고 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이의 교육비는 내가 꼭 버텨서 감당해야 할 마지노선입니다.
이렇게 나는 "끓는 물속 개구리 Boiling Frog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후배들과 술 자리에서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라고 했지만 정작 내가 미래를 대비하는 노력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예지능력을 갖는 신이 아닌 한 10년 안에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전세계를 휩쓸거고, 인공지능, 코딩, 빅데이터가 당장 필요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대비할 수 없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로 만들어진 운이 이번에는 나를 비껴갔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나와 우리 가족은 크고 작은 시련을 잘 헤쳐왔습니다. 그래서,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습니다. 그 때까지 잘 버티는 일만 남았습니다. 시원~~~~하게 비나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숙제를 잘 해내야 할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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