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보드의 역주행, Whiteboard & Nostalgia

사무실이나 회의실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미팅을 하다 보면, 그때 그때 도출된 아이디어들을 회의실 어딘가에 기록하게 됩니다.  가장 손쉽게 사용하는 것은 화이트 보드입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의 면이 기록물로 다 채워지면, 창문유리면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코로나19 전염병 예방을 위해 설치한 투명 아크릴, 유리 소재 칸막이의 벽면을 추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줌을 통한 원격, 화상회의를 할 때는 화이트보드에 대한 갈증이 폭발합니다.  

"(화이트보드 사용이 유행하게 된 이유는)

과부하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마커와 보드를 사용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Anthony Franco, founder of dry-erase company M.C. Squares, 

코로나19로 재택/원격근무가 주류를 이루면서 협업을 위한 시각적 전자 화이트보드 솔루션들도 많이 등장했지만, 사실 이들 솔루션은 포스트잇, 마커, 그리고 화이트보드를 대신할 만큼 원격 사용자 친화적이거나, 우리의 창의성을 키우도록 설계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창의성과 아날로그툴! IT기업에서 사업본부장을 담당하시던 직장 상사님이 무언가 새로운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할 때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분은 공학을 전공하셨지만, 세계사와 철학에 정통하셔서 훗날 관련된 책을 출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느날, 자사 시스템 제품이 경쟁사 시스템을 넘어 설 영업 및 마케팅 전략 수립 회의를 할 때,  사업본부장은 연필과 종이를 책상위에 올려 놓고, 연필심을 깎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손자병법, 세계전쟁사 등 옛 현인들이 남긴 싸움의 지혜와 지략의 자취를 더듬어, 지금의 경쟁상황에 대비시켜서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흰종이 위해 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키워드 들간에 선을 연결하고 그 연관관계를 생각하며 또 다른 키워드들을 도출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 창의적 사고 과정이 가장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볼펜을 사용할 수도 있고, 컴퓨터 키보드와 전자화면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사고과정을 중지시키는 경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볼펜을 사용하면 꾹꾹 눌러써야 하는 심리적으로 부담을 받게 되고, 그리고 종이와의 마찰로 인해 선을 그리거나 단어를 작성하는 과정이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아서 신경이 거슬리게 됩니다.  반면, 컴퓨터 키보드와 줌과 같은 시각적 협업툴은 키워드들 간의 관계를 연결하기 전에 툴에서 어떻게 이 연결선을 그어야 하는 지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과정이 멈춰야 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 툴을 익숙하게 사용하게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또 다른 부담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사용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포스트잇 위에 마커로 적어서 화이트보드에 붙이는 자연스러움이 줌의 공간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멈추게 되면 그것을 다시 기억해 내야 하는 과정이 불필요하게 들어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5월18일자 비즈니스위크에서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더 이상 첨단기술을 적용한 툴들의 노예가 되지 않고 가장 단순하지만 인간의 사고과정에 최적화된 부드럽게 써 지는 필기구와 화이트보드의 부활을 환영하면서 관련된 제품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Quartet Glass Dry-Erase Desktop Easel 

Quartet Desktop Computer Pad in black

 

Tackies 

 

생각을 집중하도록 도움을 주는 시간관리법인 포모도로 기법 Pomodoro Technique 

the Time Timer Dry-Erase Board 

Stickies by M.C. Squares

비즈니스위크가 전하는 화이트보드 제품 구입, 사용시 주의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사용자가 자연스러운 자세 각도로 화이트보드에 작성할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세요
• 보드 화면이 거친 제품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 지우개는 초극세사 소재 마이크로 화이버 천 제품을 사용하세요.
• 대형 화이트보드 구입시에는 설치할 공간 크기를 미리 알아두셔야 합니다.
• 지워지지 않은 마커 자국이 있다면, 그 위에 마커로 한 번 더 칠한 뒤 지우면 쉽게 지워집니다.

저도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할 때면, 볼펜보다는 만년필을, 전자칠판보다는 A4 스프링 노트를 즐겨 사용합니다.  아마도 그 시절 본부장님이 사용하는 것을 관찰한 때부터, 본격적으로 부드러운 필기구와 백지노트를 즐겨 사용하기 시작한 듯 합니다. 기술이 생산성을 향상 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아직은 지나친 첨단 기술 의존은 오히려 인간을 지치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첨단기술이 아니라, 자연에서 휴식을 얻으려고 하나 봅니다.   연필, 마커, 종이, 화이트보드, 만년필에게서 바라는 바는 "자연스러움"은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도구 자체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